군산시 바 선거구인 월명동, 삼학동 출신 배형원 의원입니다.
의례적인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지방자치의 핵심개념은 참여와 분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가 말하는 지방자치는 지방정부에 권한과 재원을 넘기는 것을 포함하는 분권입니다. 군산의 문학을 군산 문학인들의 힘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군산시가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채만식문학관은 2001년도 상반기에 준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위치에 건립되는 과정에서 작가의 출생지가 군산시 임피면인데 내흥동에 건립되는 데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작가에 대한 문학사적 이해에 대한 이념적 논란이 아직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작가의 생애는 1902년부터 1950년으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굴곡이 많았던 시기입니다. 세계사적으로 191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1917년 재정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인 로마노프 왕조의 퇴정, 레닌의 등장, 한반도는 세계열강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이 땅에 살고 있던 우리 민족은 엄청난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작가의 청소년기인 1919년에는 3.1독립운동이 있었습니다. 일제는 1910년 이후 강압적 탄압의 입장에서 3.1독립선언 이후 역사와 문화, 민족정기를 뒤흔드는 방향으로 총독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에 문학인들은 3.1독립운동이 실패라는 결론에 따라 당시에 풍미했던 낭만주의가 퇴폐적 낭만주의로 흘러갔고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영문으로 Korea Artista Proletaria Federation 약칭 KAPF문학이라고 하는 사회주의 문학단체가 결성되었습니다. 채만식 작가는 이효석 등과 함께 위의 문학단체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이에 동조하는 작품을 썼다 하여 이른바 동반작가로 분류됩니다. 이것이 작가 채만식이 이념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된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공교롭게도 작가는 1925년에 문단에 데뷔했고 그 유명한 탁류는 1937년도 작품입니다. KAPF파는 계급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운동을 목적으로 삼았으며 해방 이후 남북한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대립구도가 작가에 대한 평가는 고사하고 문학의 지류에서조차 논의되는 것이 죄악시 되었던 시대적 아픔이 있습니다.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작가의 청소년기가 시대적으로 극한 혼란과 함께 이념 이데올로기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가의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채만식이라는 작가를 시대적 희생자로부터 회복시켜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되면서 작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군산의 문학인들은 채만식이라는 작가를 시대적 가치가 반영되는 미래지향적 문학사적 인물로 재평가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영화의 대사 중에 ‘인간은 창조하기 위하여 파괴 한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경직적 행정으로 군산 문학의 본류를 이끌어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채만식문학관을 지금과 같이 유지, 보수,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군산시장은 채만식문학관에 단 한번도 전문인력을 발령한 적도 없고 문학 내지는 문학사적 이해가 높은 인력을 배치한 적도 없으며 그렇게 할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 문화해설사도 없습니다. 학계나 문학계에 도움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2010년도 군산시 예산에 채만식 생가터 매입예산이 상정되었는데 이는 생가 터인지 집필 터인지 논란조차 가시지 않은 상태이며 앞으로도 계속된 투자가 요구될 것으로 예견됩니다. 비전문가에 의한 비전문적인 문학정책으로는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채만식문학관의 운영 및 군산 문학의 본류를 문학 작가들의 창조적 상상력에 맡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군산시장은 조속한 시일내에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에 따르는 행정절차를 이행해 줄 것을 정중하게 권면합니다. 이상으로 5분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